들리는, 흔들리는

듣는 행위는 그리 간단치 않다. 외이도를 통해 들어온 무수히 많은 공기분자가 고막을 흔들 때 우리는 비로소 듣는다고 말한다. 듣는다는 곧 흔든다는 것이다.


어떤 때 우리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 누군가의 말이 나의 마음을 흔들지 못하게 물리적 진동을 심리적 진동으로 오는 길을 차단하기도 한다. 듣는다는건 청취자의 선택적 의지를 내포한다.


“말을 참 잘 듣네”. 누구도 이 문장을 ‘고막이 참 잘 흔들렸네’라고 받아들이진 않을 거다. 말이 그 마음을 동(動) 해 실제 행위로 이어질 때 우리는 잘 듣는다고 표현한다. 듣는다는 건 행위를 수반한다.


“민심을 잘 듣겠다" 지난 5월 윤 대통령은 민정수석실을 부활시킨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단지, 고막이 흔들리는 것에서 그칠 게 아니라면, 행위도 함께 동반해야 한다. 그래서 듣는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잘 듣는 정치인인 하면 한 사람이 떠오른다. 정원오 성동구청장이다. 정원오 구청장은 SNS에 성동구 제보가 올라오면 즉각 대처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성수역 혼잡함이 제기되자 바로 안전요원 상시 배치,  SM 사옥 흔들림 우려가 나오자 바로 현장점검을 나서며 화제가 됐다.


듣는다는 건 단순히 귀를 열어두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열고, 행동으로 답하는 것일테다. 국민의 말에 의지를 다해, 행동으로 흔들릴 줄 아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