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사랑을 남긴다
단단한 한 육신이 고운 가루가 됐다. 여든이 넘도록 병원 한번 가지 않았던 다부진 그 육체는 누르스름한 뼛가루로 남았다. 아들을 품에 안은 지 50여 년이 흘러, 작은 도자기 함에 담긴 당신은 다시 아들의 품에 안겼다.
2024년 9월 15일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대전으로 급히 내려갔다. 입관·발인·화장, 4일에 걸쳐 한 사람을 영원히 떠나 보냈다. 사람은 죽어서 무엇을 남기는가. 할아버지와의 이별이 내게 남긴 질문이다. 우리 가족들은 할아버지와의 좋았던 추억을 떠올리며 애도했다.
큰이모는 할아버지를 특히나 극진히 모셨다. 포항과 시흥 290km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내달려왔다. 그런 큰이모는 할아버지와 좋은 추억만 떠오른다고 했다. 그리고 더 사랑해 주지 못해서, 더 사랑을 누릴 수 없어서 슬프다고 했다. 누군가와의 사별이 애통한 건, 더 사랑해 주지 못한 죄책감, 더 사랑을 누릴 수 없는 아쉬움 때문일 것이다.
사람은 사랑을 남긴다. 한 사람을 추억하며, 우리는 관계 속에서 그 사람과의 나눈 사랑을 되새긴다. 사실, 우리 할아버지는 사랑이 많으신 분은 아니었다. 자식들에게 '사랑한다.' 한 마디 한 적 해본 적 없던 분이었다. 할아버지를 생각해서 제안한 여행도 '항상 놀 궁리만 하냐?'며 타박하던 무뚝뚝한 아버지였다.
그럼에도, 우리 가족은 할아버지만의 방식으로 남긴 사랑을 찾아내고 추억했다. 자전거에 상추를 한 봉지 가득 싣고 와서 턱 문고리에 걸어두고, 말없이 가시는 그 할아버지의 사랑을 기억했다. 할머니가 병원에 입원하고 집에 혼자서 끼니를 해결해야 하는 할아버지는 늘 '난 괜찮다, 걱정 마라'라고 말했다. 전기밥솥을 어떻게 작동하는지도 모르던 할아버지였다. 가족들에게 짐이 되지 않도록, 흔들리지 않는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는 게 당신의 사랑 방식이었음을 깨달았다.
우리는 모두 죽는다. 불확실한 세상 속에서 몇 안 되는 반론 불가능한 진리다. 나도 죽는다. 그 날, 나의 죽음을 애도하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적어도 하나 쯤은 나와 누린 사랑이 떠올랐으면. 앞으로 살면서 나의 과제는, 사라지는 것과 남겨질 것들을 착각하지 않기, 마음껏 사랑하기가 될 것 같다.